정신과

1. 가장 평온한 시기에 맞이한 우울증

다르다와틀리다는달라 2025. 12. 1. 14:51

우울증. 이상 증상 경험 과정

31살,
직업이나 가정 모두 나의 인생곡선 중 가장 평온한 시기에
갑자기 생긴 이상증세. 우울증.

우울증 없는 사람이 어딨나 다 경미한 우울증은 안고 사는 거라고 생각했고
살면서 막연하게 '한 번쯤은 정신과에 가보고 싶다' 생각했었었는데

누구 하나 날 괴롭히는 사람이 없고, 직장, 가족 모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만 있는. 31살 인생곡선 그래프 중 가장 평온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이 감사한 시기에 ···
감당할 수 없는 권태가 몰아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장인이 인생 시기 상 최소 1번씩은 온다는 단순 권태감인 줄 알았다.)



트리거가 작동될 만한 특별한 자극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내 루틴은 평소와 같았다.


평일 출근 일 퇴근 주 2회 운동 그리고 회식이나 동기모임 등 사회생활, 가족과의 행복한 주말.


이 권태감과 시기가 그나마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변화는
약 4개월간 준비한 직장(이직)에 합격했다는 것.
하지만 이때 합격도 그~~렇게 엄청 기쁘진 않았다.

분명 열심히 준비했었던 것은 사실인데,
또 막상 돌이켜보면 아니, 당시에도 어렴풋이 느끼기론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었다.

합격 후 연수원에 갈 때도
첫 출근을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지금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덤덤했다.


약 반년 간의 취준을 포함한 공백기
그렇게 이직 후 첫 출근 3일 차엔
옆자리 선임이 내가 "신규가 아니라 한 4년 넘게 근무한 직원같다"고 "이질감이 없다"라며 신기해했다.
(물론 업무적으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씩씩한 신규"
"신규인데 바로 주무팀에 간 신규"
"오자마자 ~~도 하고 대단하다"
"잘한다"
외롭지도 않고 동기들과 식사하고
사회적으로는 멀쩡했다.


그렇게 출근 한 달을 갓 넘기며  25년 11월 말.
시간이 지나며
내 안에서는 나아진 게 아니라
증상들이 점점 심해졌다.


내가 살면서 겪었던 우울함은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졌었다.
내가 더 어렸고, 나를 감싸고 있던 상황이 더 암울했을 때조차도 버티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졌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지금이 더 감당이 안된다고 느낀다.


증상을 나열하기 전에
상태와 감정을 비유하자면
거센 파도를 맞는 느낌보다는
파도에 휩쓸려 '가라앉았다.' 에 가깝다.


- 누가 말한 내용을 기억을 못 하는 건
  내가 신규라서 처음 접하는 많은 정보들이 들어와서 소화를 못 시키는. 그저 신규라서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업무적인 것뿐만이 아니었다.


- 화도 안 나고 즐겁지도 않고 무감각한 건
권태가 올 시기인가 보다 생각했다.


- 현재에 불만이 있는가?
  없다. 처음 부서배치 땐 있었다.
여태 일이 많은 부성하 보직에 있었어서 오히려 급여와 지역을 포기하고 공부하고 시험 쳐서 간 워라밸 근무강도 낮은 직장인데
그 와중에 주무팀으로 가서 신규임에도 야근 릴레이일만큼 바쁜 부서와 보직인 게 몸부림칠 만큼 불만이었다.
하지만 곧 받아들였다.
'정해진 걸 뭐 어쩌겠는가'
+ '그래도 전에 비하면' 이게 크다.
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이 원하는 쪽에 가깝다.
3개월이면 그마저도 적응해서 편해질 것 같다.


- 원하는 게 뭔가?
이게 문제라면 문제다.
분명 원하는 게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인생의 돈을 버는 목적이자 낙이 먹는 것이었던 내가
식욕이 없어졌다.
먹고 싶지도 않고 먹어도 행복하지 않아졌다.

잠을 자도 꿈투성이.
증상들이 깊어짐과 함께 가장 최근 2주간은 잠을 설쳤다.

벌레를 무서워해서 보기만 해도 팔딱팔딱 뛰던 내가
벌레를 봐도 무덤덤했다.





천장 LED 교체를 위해 올라가면 부서질 걸 알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책상 위에 올라갔고 부서지면서 살짝 다쳤다.
그리고는 덤덤하게 치웠다.
3걸음 뒤엔 멀쩡한 의자가 있었는데.




낯설어서 그런가? 아직 바뀐 환경에 적응 중인가 싶었지만
난 늘 적응력이 좋은 편이었고 지금 직장, 환경, 가정도 모두 친절하고 감사할 정도로 평온했다.


아무 자극이 없는데 분명 무덤덤한데
동시에 종종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흥분을 하게 됐다.
31살. 직장에서 울었다.
혼난 것도 아닌데, 그냥 눈물이 나왔다.
요즘 그렇게 무언가가 의지로는 주체가 안 됐다.



기억력, 인지력, 판단력을 포함한
일체의 수행능력이 전례 없이 저하됐다.


그냥 습관이자 루틴이었던 10년 넘게 써온 플래너(다이어리)도 안 쓰게 되었다.
버거워서 혹은 귀찮아서? 모르겠다.

출장신청뿐만 아니라 간단한 네이버 로그인, 방 청소, 씻기조차도.. 하긴 하는데 너무 버겁게 다가왔다.




교육출장을 가는데 준비물을 안 챙겼다.
챙겨야 한다고 인지를 했음에도 전날 미리 안 챙긴 것뿐만 아니라, 당일에도 챙기지 않고 갔다.

교육출장을 가는데 지각했다.


일을 할 때, 교육을 들을 때 가만히 앉아있기가 1시간을 넘기가 힘들다.
주의가 산만한 건 아닌데 그냥 말 그대로 고작 1시간도 힘들다.


모든 것이 덤덤하고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으면서 하기가 싫다.
의욕도 열정도 열망도 없다.



자살하고 싶은가?
아니다.
근데 그렇다고 살고 싶다는 감정도 없다.
좀.. 다 귀찮다.
팩트는 죽으려고 하는 일련의 행위조차도 귀찮다.
물론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살 건데.. 생각의 흐름이 깊게 진행되지가 않는다.


3시간 거리 운전을 하는데 7시간이 걸려서 갔다.
중간에 고속도로에선 사고가 났다.(부상 x)
졸지 않았다. 눈은 뜨고 있었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았었고,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었다. 눈은 뜨고 있었다.


멍해서 사고가 난 것보다
사고가 난 당시와 사고가 난 후의 덤덤한 내 감정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됐다.


'뇌가 지금 제기능을 하는 상태가 아니다.'

그렇게 나는 어느 고속도로에 서서
정신과를 예약했다.